경기도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 추진 경과와 정책 제안1)
- 남양주, 의정부 ‘위기 대응 거버넌스’ 작동을 중심으로 -
주민주도 화재 대응 훈련이 있던 날
지난 6월 14일 오전 10시,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의 한 주택가에 80여 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주민주도 노후주택 화재 대응 훈련’을 실시하기 위해 주민자치회 등 주민조직 8곳 구성원이 결집한 것이다. 인근 도로엔 남양주소방서와 진건파출소 대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소방차와 순찰차에 탑승한 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최종 점검을 마친 주민자치회 사무국장의 “시작” 선언과 함께 한 주민의 “불이야” 하는 외침이 들리자 참가자들은 일제히 각자 역할에 돌입했다. 가장 먼저 주민자치위원들과 이장협의회가 골목을 돌며 화재 발생을 알렸고 의용소방대는 소방차의 원활한 진입을 위해 경광봉을 들고 주차 차량을 옮겼다. 골목 초입에선 차량이 엉키지 않도록 진건파출소와 교통봉사대 대원들이 교통을 통제했다.




‘재난 약자 대피’는 행복마을관리소 지킴이들과 적십자 천마봉사회 몫이었다. 이들은 노약자, 장애인을 직접 업거나 부축하며 임시대피소로 이동했다. 마지막 순서인 ‘전 주민 대피’를 주도한 건 새마을부녀회와 생활개선회. 이들은 대피행렬이 안전하게 빠져나가도록 주요 지점에 서서 방향을 안내했고, 주민들은 200여 미터의 골목을 빠르게 이동해 최종 대피소까지 무사히 다다랐다.
‘골목 길터주기’, ‘재난 약자 대피’, ‘전 주민 대피’ 3단계로 진행된 ‘노후주택 화재 대응 훈련’이 끝나자 참여자들의 얼굴은 후련함으로 가득했다. 지난 두 달간 준비한 화재 지역 선정과 현장답사, 대피계획 수립, 주민조직과 기관 협조 요청 등 일련의 작업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자, 주민주도 재난 대응 훈련을 실시한 경기도 첫 사례라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이날 훈련에 참여한 진건119안전센터 소방관의 소회는 본 사업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20년 넘는 소방관 생활 동안 주민들이 스스로 화재 대응 계획을 세우고 소방서에 협조를 요청한 건 처음이에요. 모두가 불평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도 놀라웠고요. 소방이 주관했다면 이처럼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을 겁니다.”
핵심 전략으로서 ‘위기 대응 거버넌스’ 구축
진건읍이 훈련을 실시할 수 있었던 건,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올 4월부터 추진한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의 핵심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센터는 일상화된 재난·재해에 대응해 마을공동체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관련 연구2)를 통해 확인하고 올해 마을의 역량 강화를 위해 세 가지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진건읍에서는 이번 훈련과 함께 ‘마을 구호자원 및 안전지도 제작’을 진행했고, 또 다른 시범 지역인 의정부시에서는 ‘고립위기 대응 초기 거버넌스 구축’ 사업이 이뤄졌다.
[그림]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별 특성

시범사업은 핵심 전략으로 ‘지역 고유 위기 대응 거버넌스 구축’에 집중했다. 재난·재해 및 위험에 맞서 마을이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대응체계를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 다만 지역별 특성과 주민 구성을 고려해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데, 진건읍의 경우 그 중심에 주민자치회와 행복마을관리소가 자리하고 있다3). 자치회 활동성이 높고 다양한 주민조직과 협력이 활발하며, 마을 위기 대응 거점으로서 행복마을관리소를 위탁 운영하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 이들은 사업 과정 동안 주민 참여를 독려하고 소방, 경찰 및 행정과 소통은 물론 각종 물품 지원까지 도맡았다. 향후 지역 내 또 다른 위기에 대응하고 복구와 회복을 주도할 주체로서 첫발을 뗀 셈이다.
주민자치회&행복마을관리소 기반 거버넌스 : 남양주(진건읍)
진건읍에서 실행한 두 시범사업은 위기 대응 거버넌스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과정이었다. 먼저 ‘노후주택 화재 대응 계획 수립 및 실행’ 사업은 특성상 실행 주체들의 화재 대응 및 대피 역량이 매우 중요한데, 거버넌스 구성원 대부분 의용소방대원으로 활약한 경험 덕분에 계획수립 과정이 내실 있게 이뤄졌다. 또 소방차 진입 경로와 주민 대피경로 등 계획 전반에 대한 전문가 검토가 필요할 때 진건119안전센터 소방대원들의 자문을 적기에 받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주민자치회 분과장이 이장을 겸임하며 이장협의회 멤버로 활약한 점은 지역 주민들에게 동료 이장의 목소리를 빌어 사업을 알리고 훈련 당일 폭넓은 참여를 이끈 동력이었다.

거버넌스 작동은 진건읍의 다양한 위험 요소를 담아낸 ‘마을 구호자원 및 안전지도 제작’ 사업에서도 빛을 발했다. 특히 주민자치 위원들이 교통사고, 수해, 대설, 폭염, 화재 등 각종 위험지역을 찾아 사진과 메모로 기록을 남기는 과정에서 거버넌스 구성원들의 동참 요청을 받은 일반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현장에 동행한 것이다. 이들은 향후 재난·재해 발생 시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담은 서명(‘우리마을 안녕지킴이 동행약속’)에도 적극 동참했는데, 무려 30명이 넘었다.
무엇보다 위기 대응 및 예방 창구로서 행복마을관리소의 재발견이 눈에 띈다. 거버넌스 구성원으로서 마을 위험 요인을 탐색하고, 화재 대응 및 재난 약자 대피계획을 수립한 뒤 실행한 경험은 행복마을관리소의 기존 역할, 이를테면 ‘주민 밀착 서비스 제공’, ‘취약계층 복지 지원’, ‘안전·환경 인프라 개선’ 등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 화재 대응 훈련 과정에서 행복마을관리소 사무원과 지킴이들은 노약자, 장애인 대피를 위한 아이디어를 적극 제시했고 훈련 현장에선 휠체어 등 구호 물품을 활용해 구조에 나섰다. 단순 주민 지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이슈를 제기하고 실행하는 주체로 탈바꿈한 것이다. ‘마을 구호자원 및 안전지도’ 사업에서도 행복마을관리소가 지도의 정기 관리, 배포, 수정 역할을 도맡아 향후 ‘위기 대응 콘트롤타워’로 기능할 가능성도 열어놨다. 경기도 고유의 공공서비스 제공 플랫폼인 행복마을관리소가 진건읍 위기 대응에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복지 결합 거버넌스 : 의정부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의 또 다른 실행 지역인 의정부에서는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고독사에 집중했다. 고립 위기를 일상적으로 발굴하고 긴급상황 시 도움을 주거나 다른 고독사를 예방하는 공동체 안전망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거버넌스의 특징 역시 고독사를 각자 관점으로 바라보던 ‘마을공동체와 복지 두 영역 간 결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 거버넌스 구성도 지역 내 고독사 대응을 다년간 추진해 온 복지관과 고독사를 간접 경험한 마을활동가가 중심이다4).
사업의 핵심 목적은 두 영역이 서로의 필요를 인정하고 초기 수준의 결합을 이뤄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총 다섯 차례 걸친 회의를 통해 각자의 자원 및 한계 탐색, 공통 목표 설정, 이상적 거버넌스 구상, 거버넌스 단기 활동 도출 등 일련의 주제를 매회 논의했다. 대표적인 합의의 결과물이 바로 거버넌스 조직 명칭인 ‘의정부 시민을 만나 나눔과 참여로 연결되는 공동체 365’다. 물론 초기 단계 거버넌스이기에 앞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뒤따라야 하지만, 마을공동체 주도 고립 위기 대응을 위한 영역별 대화의 물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존 ‘제도권 재난 거버넌스’ 넘나들기
남양주, 의정부 두 곳에서 추진된 시범사업의 ‘위기 대응 거버넌스’ 작동을 살펴보면, 각각 ‘주민자치회&행복마을관리소 기반’, ‘마을-복지 결합’이란 특성을 가지면서도 일반 주민을 비롯해 지역사회 다양한 주체들과 연계를 도모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마을공동체를 중심에 두고 민·관 주체들을 다양한 형태로 포괄하고 있다.
이는 필자가 지난해 선행 연구 및 기고를 통해 밝힌 ‘마을 재난 거버넌스’ 개념과 맞닿아 있다5). 기존 재난 거버넌스가 군, 경찰, 소방은 물론 직능단체나 관변단체의 참여만을 보장해 정작 마을과 주민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만큼, 거버넌스에 마을공동체의 참여를 보장해 주민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마을공동체가 기존 제도권 재난 거버넌스의 일부인 경찰, 소방, 복지기관 등과 소통과 협력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작지만 변화의 물꼬를 튼 셈이다.

*자료: 「재난 대응에 있어 마을공동체의 새로운 역할 연구」(2023)
‘위기 대응 거버넌스’ 작동을 위한 정책 제언
그렇다면 마을공동체가 기존 ‘제도권 재난 거버넌스’를 너머 ‘위기 대응 거버넌스’의 주체로서 역할을 하려면 어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할까? 핵심은 ‘사업화’와 ‘정책화’ 두 가지 측면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사업화’는 경기도와 시·군 등 행정의 주도성이 요구된다. 경기도는 작년 12월 「경기도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 조례」 제10조(사업) 개정을 통해 ‘재난의 사전 예방·대응·회복을 위한 마을 활동 지원사업’을 새롭게 추가했다. 마을공동체의 재난·재해 및 각종 위기 대응 활동을 행정이 적극 지원하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현재 경기도 공동체지원과에서 추진하는 ‘마을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을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 접근인데, 공모사업 설계 시 가칭 ‘재난 안전’ 또는 ‘마을 위기 대응’를 분야를 신설해 주민주도 거버넌스 구축을 촉진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재난재해 대응에 관심이 높은 시·군과 경기도가 손을 잡고 기초 단위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사업도 가능하다. 본 시범사업을 통해 ‘화재 대응을 위한 진건읍 모델’, ‘고립 위기 대응을 위한 의정부 모델’을 만들었듯, ‘수해 대비를 위한 OO시 모델’, ‘폭염 대응을 위한 OO군 모델’을 새롭게 만든다면 도내 확산 가능한 모델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어 본 시범사업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경기도 공공서비스 플랫폼 행복마을관리소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마을 위기 대응을 위한 구호 물품 창고이자, 위험 요소와 안전자원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정보 창구, 주민조직과의 거버넌스 창구로서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시·군 재난·안전 부서가 인력 부족 및 현장 대응 역량의 한계를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마을공동체와 일상적 소통을 기반으로 상시 대응이 가능한 행복마을관리소는 매우 유용한 플랫폼이다.
‘정책화’는 의회의 동참이 절실한 지점이다. 기존 ‘제도권 재난 거버넌스’에 마을공동체의 참여를 보장하는 법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안전관리민관협력위원회’, ‘안전관리위원회’ 등 대표적인 거버넌스 기구의 구성과 운영을 담당하는 부서가 도내 안전관리실인 만큼, 특히 의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공감이 매우 중요하다.
이밖에 중장기 과제로서 마을 위기 대응의 주체로서 ‘주민조직’의 활동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제도적 지원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 주민들이 위기 대응 시 지역 내 각종 자원을 자발적으로 연계하고 회복과 복구를 위해 발 벗고 나섰던 경험을 고려하면 이 같은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 체계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경기도 마을공동체지원센터는 이번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의 성과를 기반으로 내년 시범사업 지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행정과 의회의 정책적 일관성, 그리고 안정적 지원이다. 재난이 일상화된 지금, 지역 고유 ‘위기 대응 거버넌스’ 구축은 선택이 아닌 시간을 다투는 문제가 아닐까? 도내 31개 시·군이 각자 특성에 맞는 대응체계를 만드는 과정에 도와 의회, 시·군 그리고 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서둘러 머리를 맞대기를 기대한다.
<미주>
1) 이 글은 필자가 2024년 4~7월 남양주와 의정부에서 추진한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세부 내용과 현장 영상, 최종보고회 자료는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 권기태 외, 2023, 「재난 대응에 있어 마을공동체의 새로운 역할 연구
3) 진건읍 ‘위기 대응 거버넌스’는 주민자치회장, 주민자치회 사무국장, 주민자치회 분과장 2인, 행복마을관리소장, 진건읍 주무관 등 총 6인으로 구성된다.
4) 의정부 ‘위기 대응 거버넌스’는 지역 마을넷 대표, 교육공동체 대표, 주민조직 대표 등 마을 영역 3인과 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2), 주거복지사(1) 등 복지 영역 3인, 의정부시 주무관 1인 등 총 7인으로 구성된다.
5) 김현수, 2023, <마을 재난 거버넌스와 공동체 역할>, 수요일엔마프 제15호.
경기도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 추진 경과와 정책 제안1)
- 남양주, 의정부 ‘위기 대응 거버넌스’ 작동을 중심으로 -
주민주도 화재 대응 훈련이 있던 날
지난 6월 14일 오전 10시,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의 한 주택가에 80여 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주민주도 노후주택 화재 대응 훈련’을 실시하기 위해 주민자치회 등 주민조직 8곳 구성원이 결집한 것이다. 인근 도로엔 남양주소방서와 진건파출소 대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소방차와 순찰차에 탑승한 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최종 점검을 마친 주민자치회 사무국장의 “시작” 선언과 함께 한 주민의 “불이야” 하는 외침이 들리자 참가자들은 일제히 각자 역할에 돌입했다. 가장 먼저 주민자치위원들과 이장협의회가 골목을 돌며 화재 발생을 알렸고 의용소방대는 소방차의 원활한 진입을 위해 경광봉을 들고 주차 차량을 옮겼다. 골목 초입에선 차량이 엉키지 않도록 진건파출소와 교통봉사대 대원들이 교통을 통제했다.
‘재난 약자 대피’는 행복마을관리소 지킴이들과 적십자 천마봉사회 몫이었다. 이들은 노약자, 장애인을 직접 업거나 부축하며 임시대피소로 이동했다. 마지막 순서인 ‘전 주민 대피’를 주도한 건 새마을부녀회와 생활개선회. 이들은 대피행렬이 안전하게 빠져나가도록 주요 지점에 서서 방향을 안내했고, 주민들은 200여 미터의 골목을 빠르게 이동해 최종 대피소까지 무사히 다다랐다.
‘골목 길터주기’, ‘재난 약자 대피’, ‘전 주민 대피’ 3단계로 진행된 ‘노후주택 화재 대응 훈련’이 끝나자 참여자들의 얼굴은 후련함으로 가득했다. 지난 두 달간 준비한 화재 지역 선정과 현장답사, 대피계획 수립, 주민조직과 기관 협조 요청 등 일련의 작업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자, 주민주도 재난 대응 훈련을 실시한 경기도 첫 사례라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이날 훈련에 참여한 진건119안전센터 소방관의 소회는 본 사업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20년 넘는 소방관 생활 동안 주민들이 스스로 화재 대응 계획을 세우고 소방서에 협조를 요청한 건 처음이에요. 모두가 불평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도 놀라웠고요. 소방이 주관했다면 이처럼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을 겁니다.”
핵심 전략으로서 ‘위기 대응 거버넌스’ 구축
진건읍이 훈련을 실시할 수 있었던 건,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올 4월부터 추진한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의 핵심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센터는 일상화된 재난·재해에 대응해 마을공동체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관련 연구2)를 통해 확인하고 올해 마을의 역량 강화를 위해 세 가지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진건읍에서는 이번 훈련과 함께 ‘마을 구호자원 및 안전지도 제작’을 진행했고, 또 다른 시범 지역인 의정부시에서는 ‘고립위기 대응 초기 거버넌스 구축’ 사업이 이뤄졌다.
[그림]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별 특성

시범사업은 핵심 전략으로 ‘지역 고유 위기 대응 거버넌스 구축’에 집중했다. 재난·재해 및 위험에 맞서 마을이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대응체계를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 다만 지역별 특성과 주민 구성을 고려해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데, 진건읍의 경우 그 중심에 주민자치회와 행복마을관리소가 자리하고 있다3). 자치회 활동성이 높고 다양한 주민조직과 협력이 활발하며, 마을 위기 대응 거점으로서 행복마을관리소를 위탁 운영하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 이들은 사업 과정 동안 주민 참여를 독려하고 소방, 경찰 및 행정과 소통은 물론 각종 물품 지원까지 도맡았다. 향후 지역 내 또 다른 위기에 대응하고 복구와 회복을 주도할 주체로서 첫발을 뗀 셈이다.
주민자치회&행복마을관리소 기반 거버넌스 : 남양주(진건읍)
진건읍에서 실행한 두 시범사업은 위기 대응 거버넌스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과정이었다. 먼저 ‘노후주택 화재 대응 계획 수립 및 실행’ 사업은 특성상 실행 주체들의 화재 대응 및 대피 역량이 매우 중요한데, 거버넌스 구성원 대부분 의용소방대원으로 활약한 경험 덕분에 계획수립 과정이 내실 있게 이뤄졌다. 또 소방차 진입 경로와 주민 대피경로 등 계획 전반에 대한 전문가 검토가 필요할 때 진건119안전센터 소방대원들의 자문을 적기에 받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주민자치회 분과장이 이장을 겸임하며 이장협의회 멤버로 활약한 점은 지역 주민들에게 동료 이장의 목소리를 빌어 사업을 알리고 훈련 당일 폭넓은 참여를 이끈 동력이었다.
거버넌스 작동은 진건읍의 다양한 위험 요소를 담아낸 ‘마을 구호자원 및 안전지도 제작’ 사업에서도 빛을 발했다. 특히 주민자치 위원들이 교통사고, 수해, 대설, 폭염, 화재 등 각종 위험지역을 찾아 사진과 메모로 기록을 남기는 과정에서 거버넌스 구성원들의 동참 요청을 받은 일반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현장에 동행한 것이다. 이들은 향후 재난·재해 발생 시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담은 서명(‘우리마을 안녕지킴이 동행약속’)에도 적극 동참했는데, 무려 30명이 넘었다.
무엇보다 위기 대응 및 예방 창구로서 행복마을관리소의 재발견이 눈에 띈다. 거버넌스 구성원으로서 마을 위험 요인을 탐색하고, 화재 대응 및 재난 약자 대피계획을 수립한 뒤 실행한 경험은 행복마을관리소의 기존 역할, 이를테면 ‘주민 밀착 서비스 제공’, ‘취약계층 복지 지원’, ‘안전·환경 인프라 개선’ 등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 화재 대응 훈련 과정에서 행복마을관리소 사무원과 지킴이들은 노약자, 장애인 대피를 위한 아이디어를 적극 제시했고 훈련 현장에선 휠체어 등 구호 물품을 활용해 구조에 나섰다. 단순 주민 지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이슈를 제기하고 실행하는 주체로 탈바꿈한 것이다. ‘마을 구호자원 및 안전지도’ 사업에서도 행복마을관리소가 지도의 정기 관리, 배포, 수정 역할을 도맡아 향후 ‘위기 대응 콘트롤타워’로 기능할 가능성도 열어놨다. 경기도 고유의 공공서비스 제공 플랫폼인 행복마을관리소가 진건읍 위기 대응에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복지 결합 거버넌스 : 의정부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의 또 다른 실행 지역인 의정부에서는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고독사에 집중했다. 고립 위기를 일상적으로 발굴하고 긴급상황 시 도움을 주거나 다른 고독사를 예방하는 공동체 안전망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거버넌스의 특징 역시 고독사를 각자 관점으로 바라보던 ‘마을공동체와 복지 두 영역 간 결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 거버넌스 구성도 지역 내 고독사 대응을 다년간 추진해 온 복지관과 고독사를 간접 경험한 마을활동가가 중심이다4).
사업의 핵심 목적은 두 영역이 서로의 필요를 인정하고 초기 수준의 결합을 이뤄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총 다섯 차례 걸친 회의를 통해 각자의 자원 및 한계 탐색, 공통 목표 설정, 이상적 거버넌스 구상, 거버넌스 단기 활동 도출 등 일련의 주제를 매회 논의했다. 대표적인 합의의 결과물이 바로 거버넌스 조직 명칭인 ‘의정부 시민을 만나 나눔과 참여로 연결되는 공동체 365’다. 물론 초기 단계 거버넌스이기에 앞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뒤따라야 하지만, 마을공동체 주도 고립 위기 대응을 위한 영역별 대화의 물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존 ‘제도권 재난 거버넌스’ 넘나들기
남양주, 의정부 두 곳에서 추진된 시범사업의 ‘위기 대응 거버넌스’ 작동을 살펴보면, 각각 ‘주민자치회&행복마을관리소 기반’, ‘마을-복지 결합’이란 특성을 가지면서도 일반 주민을 비롯해 지역사회 다양한 주체들과 연계를 도모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마을공동체를 중심에 두고 민·관 주체들을 다양한 형태로 포괄하고 있다.
이는 필자가 지난해 선행 연구 및 기고를 통해 밝힌 ‘마을 재난 거버넌스’ 개념과 맞닿아 있다5). 기존 재난 거버넌스가 군, 경찰, 소방은 물론 직능단체나 관변단체의 참여만을 보장해 정작 마을과 주민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만큼, 거버넌스에 마을공동체의 참여를 보장해 주민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마을공동체가 기존 제도권 재난 거버넌스의 일부인 경찰, 소방, 복지기관 등과 소통과 협력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작지만 변화의 물꼬를 튼 셈이다.
*자료: 「재난 대응에 있어 마을공동체의 새로운 역할 연구」(2023)
‘위기 대응 거버넌스’ 작동을 위한 정책 제언
그렇다면 마을공동체가 기존 ‘제도권 재난 거버넌스’를 너머 ‘위기 대응 거버넌스’의 주체로서 역할을 하려면 어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할까? 핵심은 ‘사업화’와 ‘정책화’ 두 가지 측면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사업화’는 경기도와 시·군 등 행정의 주도성이 요구된다. 경기도는 작년 12월 「경기도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 조례」 제10조(사업) 개정을 통해 ‘재난의 사전 예방·대응·회복을 위한 마을 활동 지원사업’을 새롭게 추가했다. 마을공동체의 재난·재해 및 각종 위기 대응 활동을 행정이 적극 지원하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현재 경기도 공동체지원과에서 추진하는 ‘마을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을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 접근인데, 공모사업 설계 시 가칭 ‘재난 안전’ 또는 ‘마을 위기 대응’를 분야를 신설해 주민주도 거버넌스 구축을 촉진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재난재해 대응에 관심이 높은 시·군과 경기도가 손을 잡고 기초 단위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사업도 가능하다. 본 시범사업을 통해 ‘화재 대응을 위한 진건읍 모델’, ‘고립 위기 대응을 위한 의정부 모델’을 만들었듯, ‘수해 대비를 위한 OO시 모델’, ‘폭염 대응을 위한 OO군 모델’을 새롭게 만든다면 도내 확산 가능한 모델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어 본 시범사업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경기도 공공서비스 플랫폼 행복마을관리소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마을 위기 대응을 위한 구호 물품 창고이자, 위험 요소와 안전자원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정보 창구, 주민조직과의 거버넌스 창구로서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시·군 재난·안전 부서가 인력 부족 및 현장 대응 역량의 한계를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마을공동체와 일상적 소통을 기반으로 상시 대응이 가능한 행복마을관리소는 매우 유용한 플랫폼이다.
‘정책화’는 의회의 동참이 절실한 지점이다. 기존 ‘제도권 재난 거버넌스’에 마을공동체의 참여를 보장하는 법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안전관리민관협력위원회’, ‘안전관리위원회’ 등 대표적인 거버넌스 기구의 구성과 운영을 담당하는 부서가 도내 안전관리실인 만큼, 특히 의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공감이 매우 중요하다.
이밖에 중장기 과제로서 마을 위기 대응의 주체로서 ‘주민조직’의 활동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제도적 지원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 주민들이 위기 대응 시 지역 내 각종 자원을 자발적으로 연계하고 회복과 복구를 위해 발 벗고 나섰던 경험을 고려하면 이 같은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 체계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경기도 마을공동체지원센터는 이번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의 성과를 기반으로 내년 시범사업 지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행정과 의회의 정책적 일관성, 그리고 안정적 지원이다. 재난이 일상화된 지금, 지역 고유 ‘위기 대응 거버넌스’ 구축은 선택이 아닌 시간을 다투는 문제가 아닐까? 도내 31개 시·군이 각자 특성에 맞는 대응체계를 만드는 과정에 도와 의회, 시·군 그리고 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서둘러 머리를 맞대기를 기대한다.
<미주>
1) 이 글은 필자가 2024년 4~7월 남양주와 의정부에서 추진한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세부 내용과 현장 영상, 최종보고회 자료는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3) 진건읍 ‘위기 대응 거버넌스’는 주민자치회장, 주민자치회 사무국장, 주민자치회 분과장 2인, 행복마을관리소장, 진건읍 주무관 등 총 6인으로 구성된다.
4) 의정부 ‘위기 대응 거버넌스’는 지역 마을넷 대표, 교육공동체 대표, 주민조직 대표 등 마을 영역 3인과 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2), 주거복지사(1) 등 복지 영역 3인, 의정부시 주무관 1인 등 총 7인으로 구성된다.
5) 김현수, 2023, <마을 재난 거버넌스와 공동체 역할>, 수요일엔마프 제15호.